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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2017~

김지애 개인전 Song of Body 6/24~7/15 스페이스몸미술관


김지애 작가의 작업은 반전의 연속이다. 반전은 표면과 내부의 전복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작업 과정 속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작가는 일생의 절반 이상을 아티스트로 살아왔다. 시간의 두께 안에서 자연스럽게, 혹은 인고의 노력 안에 성취해 온 작품 세계는 다양한 조형 언어로 형성되어 있다. 세밀하고 두터운 드로잉의 반전 질감, 무채의 강렬함과 채색의 다채로움, 뾰족했던 예술가 자아가 오목하게 들어가면서 역으로 튀어나오는 새로운 작품의 요소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글로서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다만 이 글에서는 작가가 나이테처럼 쌓아 온 작업의 두께와 변곡점, 혹은 이탈점에 대해 짚어나가며 김지애의 작업 세계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길잡이가 되고자 한다.


즉흥으로 그리는 시간의 두께

김지애 작가의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꼽자면 ‘즉흥성’일 것이다. 일필휘지로 멋들어지게 써 내려간 듯한 목탄 드로잉 시리즈는 그 작업의 시작이자 끝나지 않은 과정 중에 있다. 대표적인 작업이 <몸의 노래>(2021)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실제 댄서가 작가의 작업실에서 즉흥적인 안무로 춤을 추면, 작가가 이를 포착하여 그린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무목적성을 띠고 있고 즉흥적이지만 또한 동시에 긴 시간의 너울을 담으려는 심오한 시도를 가지고 있다. 3분에서 4분 남짓, 한 곡의 음악에 맞추어 추는 댄서의 몸과 움직임은 작가가 표현하려고 하는 예술의 본질이다. 그러나 작가는 ‘춤’이라는 예술 대상을 단지 순간의 포착으로 국한하지 않고, 몇 분가량의 몸의 움직임을 모두 한 폭의 드로잉에 담는다.

평면의 한계는 동시에 새로운 창조의 원천이 된다. 20세기 초반 큐비즘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평면 파괴’의 속성은 다름 아닌 ‘움직임’, 혹은 ‘시간의 흐름’을 한 폭의 평면에 담는 것이었다. 평면 작업이 단지 정지된 풍경을 그리는 데 스스로를 가둔다면, 그것은 스냅 사진과 다를 바 없이 얼마나 현실을 똑같이 재현하는가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김지애 작가는 댄서가 몇 분간 몰두하며 움직인 예술적 모멘트의 총체를 모두 드로잉에 담고자 한다. 두텁고 강렬한 목탄 드로잉의 표면을 갈라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의 움직임을 좇으려 한 작가의 노력을 발견하게 된다.

<몸의 노래>시리즈를 포함하여 즉흥적인 목탄 드로잉 작업은 김지애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다. 작가들은 각자 저마다의 특기와 장기가 존재한다. 선을 잘 그리는 작가, 색을 잘 쓰는 작가, 시각예술에 유의미한 개념과 이데올로기를 작업에서 잘 풀어내는 작가, 공간 감각이 탁월한 작가... 김지애 작가는 그중에서도 즉흥적인 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가 아닐까? 모두가 나잘난 예술가이지만 그 중에서도 누가 이렇게 선을 자유롭고 대담하며 매력적으로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예술가 타자를 바라보며 매료된 순간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구사하되, 그 시간의 두께를 평면에 담고자 한 시도는 매우 강렬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김지애 작가의 작업을 떠올린다면 목탄 드로잉 시리즈가 일등이 아닐까? 리듬이 시작되고, 이것을 선이 따라간다. 규칙과 불규칙 사이의 변곡점을 선이 담는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관객의 시선이 머무르게 된다. 어떠한 플랜이나 규칙 없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광기와 자유로움으로 이루어진 목탄 드로잉은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솔로에서 동행으로

김지애 작가의 초기 작업에는 언제나 작가 자신이 등장한다. 언젠가, 작가의 아티스트 에고(혹은 나르시시즘)와 작업에 스스로 등장하는 경우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작품은 작가에게 자아의 실현 상대이자 투영의 대상이다. 그러나 작업을 대상의 영역으로 제한하는 작가와 자신의 삶과 자아 자체로 일체하는 작가는 나름대로 구분된다. 김지애 작가의 초기 작업에는 단순히 작가가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림 속에서 감각하고 움직이고 바라보는 모든 것이 작업으로 치환되어 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이나 가치 판단의 중심을 작가로 두게 된다. 이때의 작업에는 젊은 여성으로서 작가의 매력이 거침없이 표현되어 있는 때이기도 하다.

한편 작가의 최근 작업에서는 두 사람, 듀오, 동행인이 등장한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 외의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과 조연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었다면, 최근 작업의 두드러진 변화는 역할 분배에 대한 의도가 희미해지고 대신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움직임의 일치이다. <같이 가자>(2020)라는 제목으로 이름 지어진 시리즈는 작가가 작가로서, 또한 인간으로서 성숙을 거듭하면서 깨우친 인생과 예술의 새로운 면모가 투영되어 있다. 그동안 뛰어난 예술가 한 명의 기량, 그 안에서 나르시시즘의 발현, 그림 속 명백한 주인공의 퍼포먼스가 작업의 이야기를 이루어왔다면, <같이 가자>에서는 드디어 동등한 주체로서의 타자가 등장한다. 또한 타자의 역할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거나 주연과 조연의 역할 분배가 무의미한, ‘동행’이라는 어우러짐과 하모니의 객체로의 전환은 작가의 성숙도와 더불어 고독한 예술가의 SOS 신호를 감지하게 함으로써 진한 감동을 가져온다.

미술비평을 하는 입장에서 일반인보다는 월등히 많이 예술가를 접하지만, 인터뷰가 끝난 뒤 이면의 예술가의 ‘진짜 삶’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재능은 축복과 동시에 희생을 요구한다. 뛰어난 감각과 기술은 날개처럼 작가의 인생을 날아오르게 하지만, 동시에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과 멀어지게 한다. 예술가의 강한 자아는 한편 예술가를 가두고 구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작업 스타일을 시도하면서 예술가는 자아의 안팎을 넘나들며 인생의 두께를 작업에 담게 된다. 다섯 시간의 인터뷰에 걸쳐 파악해 보고자 집중한 김지애 작가의 예술 세계도 작가와 쌍둥이처럼 분리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확장과 변주, 그리고 투쟁을 거듭하고 있다고 느꼈다.


표면에서 하부 세계로

“화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린다”

바우하우스 멤버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는 색과 선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조형 언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노력에는 예술이 단지 순간이나 파편에 머무르지 않고 저장과 교육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구축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김지애 작가 역시 작가는 보이지 않는 조형 언어를 하나하나 구축해 나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색채를 사용함에 있어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블루 계통의 색을 쓰면서 어떤 감정을 대입함에 있어 감정의 밀도와 무게를 측정하려는 시도 등이 그러하다. 이런 노력은 예술가가 색과 선을 사용할 때 단지 표면의 감각에 그치는 것을 뛰어넘어 체계화된 시스템, 과학적으로 분석이 가능한 유기 체제로 작업을 창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예술가 한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그러나 무한한 예술의 연속성을 남기고자 할 때, 예술가는 평면적 표면 아래 세계의 구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김지애 작가가 남길 ‘색의 체계’는 분명, 작가의 다음 스텝을 기대하게 만든다.


조숙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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