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riting/2018~

화가김지애의 다시 걷는 방역여사의 길

jiehkim 2020. 9. 17. 12:41

문예원 인체드로잉반은 개강되었지만 회화반은 폐강. 두분만 등록을 하셨고 인체드로잉반도 최저 인원에 맞춰 겨우 했다. 8년째 되었는데 두명 등록이라니 실망이 컸다.
여기저기 공모는 다 떨어졌고 개인전 하자는 곳, 전시하자는 것 모두 없다. 유망작가 였던 적도 있었던것 같은데 낫띵나우. 특수고용 정부지원금 150만원은 12,1월에 가입되어있던 고용보험때문에 못 받았다. 서울시 프리랜서지원금도 마찬가지다. 편의점 이틀 나가기때문에 실업급여도 못받는다. 진정 사각지대는 내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더 적절한 사람이 해택을 받으면 괜찮다는 마음을 가진 나다. 할수없다 생각한다. 공모전이건 전시 지원금이건 '정말 좋은거라 당선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
코로나때문은 아니지만 시기가 맞물려, 내가 가장 좋아하던 미술학원 누드드로잉수업(내게 재미와 기쁨, 보람과 사회생활을 주었었다)도 끊겼고, 나는 내 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내가 억지로라도 규칙적으로 걸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 다 없어졌다. 나는 위험했다. 최저생계비에 준하는 수입도 없이 내내(1999년 대학원 졸업이후, 작가생활을 시작한 이후, 년 평균1000만원도 못 벌었었다. 조카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시켜 언니가 주는 급여가 있었던 4년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부자였다. 나는 도데체 어떻게 살 수 있었던 걸까? ) 살아왔다는걸 기적이라고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벼랑끝에서 더 걸어가지는 않도록, 나는, 작가, 화가라는 건 잠시 내려둬야 하는 것 같다. 잠시일까? 잠시라면 뭘 기대하는걸까? 잠시는 어떤 모양이 되면 없어질까.
주말엔 편의점을, 주중엔 중고등학교 방역일을 했다. 20대엔 알바를 하고 작업하고 춤도 췄었다. 모든일을 다 했었는데, 50대엔 그게 힘든것 같다. 의지가 없어서거나 약해서 그런걸까? 아니면 신체나이로 인한것이라 자연스러운걸까?
최소 이년에 한번씩은 새 그림으로 개인전을 하고, 그림을 팔면서, 시간강사 1~2개정도 걸고, 죽을때 까지 조금씩 나아지는 나의 위치를 확인하며 살 줄 알았다. 세계적인 화가는 아니어도 내 그림을 좋아하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늘려가면서, 유대는 깊어지고 우정이 쌓이는 그런 삶을 살 줄 알았다. 몇백억 부자는 아니어도, 나 하나 우아하게 건사하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면서, 50대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꺼라 생각했던것 같다. 결혼을 안해도 끊기지 않게 연애는 하면서 여성호르몬을 원할히 돌리고, 나이가 들면 그와 베스트프랜이 되어 뭔가 쿨하게 살 줄 알았다. 2008년 홍콩 개인전때 그림들을 꽤 팔고는 세계적인 화가도 될 줄 알았다. 뭐가 문제였던걸까. 그냥 눈을 감고 있다가 떠 보니, 처음 데뷔했을때보다도 더 어려운 위치에 서서 비틀거리는 내가 있었다. 그림을 안 그리고 있지는 않았다. 내 키 165센티 보다도 높게 드로잉들을 쌓았고 정리도 못할만큼 내용도 많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해서 뭐하나 같은 생각들만 내 뇌를 쑤신다.
동정이란걸 바랬다. 그래서 나의 현재를 내가 부딛히는 사람들에겐 다 얘길 했던 것 같다. 화가로 살아갈수있게 용기되는 의미로라도(내 그림이 좋지 않더라도, 그림따위에 관심이 없더라도) 누가 내 그림하나만 사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다. 그냥 어깨 한번 두드려 주길 바랬다. 그런 일은 없었고, 나는 화가났고 슬펐고 좌절했다. 사람들은 충고했다. 편의점 주말 야간 근무를 하는 내게 오피스텔을 사서 임대를 하라고 진지하게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너도 특별할것 없으니 학원을 열고 학생들을 받아. 다들 그러고 살아' 라는 내용의 말을 하고싶어 죽었고, 했다. 내가 미술교습소를 안 여는 이유가, 나 스스로 자존심이나 특별하다 여기기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줄은 몰랐다. 나는 동정이란 옷을 입고 영업중이었는데, 그들은 조언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창작은 불가능한 것같다. 그냥 무너져서 보낸다. 특히나 규칙적으로 타인에게 보여줄 일이 없어진 나는 위기다. 계속 하지 않으면, 하고 있지 않으면, 귀찮아서 붓을 못 잡는다. 잡아서 뭐해 라는 생각이 정수리에 꽂히면 여간해선 뺄수가 없다. 몸은 바닥에 박힌다.

다시 방역여사의 길을 가기로 한다.
이번주 월요일 부터 성산동의 한 중학교에 출근.
에브리데이 등교 질서 유지, 교무실과 등교학급 소독, 급식 질서유지가 업무인데 등교하지 않는 학년 등교예정 학년까지 주1회 소독 .
애들한테 '안녕 안녕~' 인사하는건 참 좋다.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던 이룸미술학원 애들이 그립다. 내가 더 잘했으면 수업이 유지됐을까? 나는 더 잘할수 없을만큼 했기에, forget it -!
1학기 여고소독보다 2시간 일찍 시작하니, 계획을 잘 세우고 이 시기를 잘 보내야 한다. 성취감과 발전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므로 내가 어떻게 지내는가가 제일 중요하다. 편의점도 마찬가지.
보안경도 걸레도 소독액도 모든게 바꼈다. 나는야 방역여사. 대의를 세우는 일이 아니니 너무 큰 책임감을 가지지는 말자. 첫날부터 같이 일하는 분으로 부터 '일벌이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왜 여기저기서 나에게 경고하고 가르칠까. 나는 그들에게 그런말을 안하는데 말이다.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건, 사람들은 참 '아무말이나' '그냥' 말을 많이 한다는 것.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가 있고, 나도 자기들 같은지 묻는다는 것. 몇달을 규칙적으로 볼 사람들한테, 남편죽었어요 애가 둘이에요 할 수는 없으니, 그냥 안했다고 한다. 말을 흐리는 기술은 통하지 않는다. 놀라면서 왜 안했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그들이 궁금하지 않으니 묻지 않는다. 어색해진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면서 카드값을 내자. 월세를 내자. 그냥 한달만 살자. 재료비 없슴.
무언가 차려놓고 화려하게 먹고싶었는데, 나의 선택은 편의점 도시락(9첩반상)과 작은 사이즈 새우탕면, 짜장범벅, 김밥은 두줄. 몽쉘통통 2+1과 썬칩, 음료수는 초코에몽.
군것질 하지말것. 몽쉘통통 쑤셔넣기 하지 말것. 큰봉지 썬칩도, 라면 두개씩 끓여먹는것도 말 것. 자기전에 먹지말것. 당분간 이것만은 지켜보자.
나중에 품위유지 할수 있을때, '좋은데' 가서 '좋은사람들'과 진짜 맛있는거 먹자.
방역여사건, 작가건 뭐건, 몸과 맘 둘다 건강해야함을 잊지마라.

월요일 저녁엔 교수님업무 수행. 첫날은 형태잡는법 덩어리 표현 등 기초 시범을 쫙 날림. 이제 구두는 무리인가 ....ㅠㅠ
나 아니라도 열화상 카메라에 예쁘게 나오는이들은 거의 드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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