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riting/2018~

방역여사 애킴의 두번째 학교 라스트데이

jiehkim 2021. 3. 18. 08:37

2020년 9월부터 했던 중학교방역여사 업무를 마감한 날. 2021 2월 4일.
2학기 중학교에선 등교인원도 적었는데다가 확진자 1명 발생 이후 전면 온라인 수업을 하니 일은 정말 수월했었다. 1학기 여고소독과는 비할수가 없었다.
마지막 근무일에는 1학년이 될 초6 아이들이 입학원서를 내러오고 중3들은 학교배정을 받느라 모두왔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초6애들은 모두들 상당히 긴장한 모습으로 거리두기를 위해 찍혀진 노랑점에 정확하게 딱딱 서는데, 정말 귀여웠다. 와 이랬던 애들이 3학년이 되는구나, 이랬던 내가 50이 되었구나 생각한다.

방역여사의 라스트데이. 이 학교에선 미화부선생님들과도 인사를 하고 지냈었기에 이별 인사를 해야하나 고민을 했다. 잘해주셨는데...다시 부를지도 모르니 보류. 잠시 정착하는 항구에서 만난 인연들처럼, 나는 스치고 또 나를 스친다. 이런게 사회생활인데 너무 몰랐다

Law&order성범죄전담반SVU . 한 트랜스젠더 고등학생 애가 다리 난간에서 추락한다. 직전에 몇명의 아이들에게서 놀림과 몰림을 당하다가 일어난 사고. 그 아이들중 한명(다른애들로부터 얘가 주도한거라고 몰리나 가장 수동적이었던 아이. 이아이의 그림으로 본 에피소드는 시작함) 이 보낸 진심어린 메세지에 추락했던 아이는 우정을 느끼고 사과를 수용한다. 이 장면에 진한 감동과 경계를 넘은 소통이 있다. 결국 트랜스덴더 아이는 사망.
아이가 보낸 사과의 그림을 보면서 나도 울컥했다. 이런게 그림이지. 단 한명에게 다가가는 마음과 진심 그리고 감동의 기능, 말로 할수없는 표현을 가능케 하는 것. 그러니 누군가 한명이 그 그림을 사지. 그러니 작가가 존재해도 되지. 존재할 수 있지.
나를 돌아본다. 내 그림들이 다 후져보인다.
나는 말을 잘 못하고 또 조리있게 내 그림을 정리하는 글을 잘 못쓴다. 줄 곧,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여겼고, 내 그림과 나에게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풀고 쓰거나 말하고 싶어하는 누군가를 만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시간들을 보냈었는데..., 지금은 예전 20대 30대 때보다 더 내가 나를, 내 그림을 설명해야 하는 위치가 되었다. 벅차고 어렵다.
40대 까지는 본인이 그런 어필을 열심히 하고, 50대부터는 주변에서의 발견과 토론이 더 많아야 맞는것 같다. 나는 그전까지 해왔던 그림에 더 치중 하면서 정진하고, 내 뒤의 사람들을 도와 좋은 이끔을 주면서 말이다. 내가 쉬었다가 50이 된게 아니고, 나는 2000년 개인전 이후 다른일 안하고 그림만 그려왔기 때문에 이런 소릴 하는것 같다. 그게 '안정적'이라는 말일텐데..., 나잇값을 못하고 있다. 그게 제일 부끄럽다.
머리는 딸리고 논리는 더 엉망진창이다. 예술지원 공모 서류 작성을 못하겠다. 나오는 공고마다 수차례 내면서도 죄다 떨어지는 이유가 있을텐데, 보완이 안된다. 그냥 멈춰야할까? 내년에 전시라도 하려면 이런 공모에서 되는게 나에겐 최선인데, 못하겠는데 어쩌지?
소독하고 편의점에 나가는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하루하루씩 지금처럼 그냥 살까? 전시 안하고, 그림 안 팔고, 그림 안 그리고.
안하면 못하게 되고 하기 싫고 그만두게 되는거지. 어떤일이 안 그렇겠어.

이 그림 잘 그리는 아이는 성인교도소 20년형을 선고받는다. 사망한 아이의 부모들이 탄원을 했지만 소용이 없다. 안타까운 결론으로 끝난다.
내겐 메세지가 명확하고 진심이 담긴 그림은 외면받지 않는걸 알게해주면서도 나의 정리되지 않는 언어로 된 메세지 생각에 다시 방황하는 시간이 된 에피소드였다.

다리 난간에 있는 아이를 본 첫 인상. 순간 기억력 최고다
'시간을 돌릴수 있다면 절대 그러지 않을꺼야'
자기가 이 아이를 생각하고 있음을 알리는 그림
편지의 마지막 장. '언젠가 나를 용서해주길 바래' 흑인과 백인, 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경제적 계층차이,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젠더 아닌 사람의 차이 등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림이고 그런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