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riting/2018~

손목 골절과 민주주의

jiehkim 2022. 3. 19. 02:36
브이를 하며 열심을 다지는 패션죽임골절녀.

• 2월 설날 미끄러져서 오른쪽 손목이 부러졌다.
아야 ㅠㅠ ;
작년 초엔 화상을 입었던 터라, 통증 비교놀이를 하며 견뎠던것 같다. 화상과 골절 중 뭐가 더 아플까, 손목 골절과 발목 골절 중 뭐가 더 불편할까, 병원비교, 의료진 비교등등.
왼손잡이인 나는 오른손을 너무 안 쓴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 한 해 오른손 글씨 쓰기를 연습했고, 1년쯤 지나니 'MCN (michinnyun) 글씨'로는 보이지 않게 되었었다. 나의 오른손이 서운했던 걸까? 자기 존재감을 처절하게도 알려주는 부상 기간을 보내고 있다.

• 손목 골절은 민주주의 같다. 깁스를 풀고도 통증과 붓기는 계속되는 것, 기능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게 꼭 민주주의 같다. 정권이 바뀌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도 기대했던 일을 못하기도 하고, 더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그렇고, 뼈가 붙었다고 해서 방심하고 무리하면 다시 골절되기 쉬운 게 민주주의 같다. 시간과 인내를 들여 소중히 내가 지켜내지 않으면 다시 부러진다. 아야 ㅡ ㅡ ;

• 나보다 4살 많은 언니가 매주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주었다. '내리사랑 어버이 은혜' 노래를 언니를 향해 부른다. 언니 등에 올라타서 산다. 미안했다.
대학 1학년 때 발목에 금이 가서 석고 통깁스를 했었다. 딱 30년 전이다. 아버지가 학교까지 매일 등하교를 시켜주었고, 외할머니가 머릴 감겨 주셨다. 고맙다는 말 안했던 것 같다. 두 분 다 돌아가셨다. 목발을 짚고 다니니 정말 모든 사람들이 다 잘해 주었다. 부자유했지만 불행하단 생각도, 부상으로 인한 우울증도 없었던 것 같다. 어렸고 하루하루가 다 재미있었다.
이번엔 달랐다.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컸다. 미안해질까봐 사람을 피했고 긴장했다. 자꾸 쉬고 싶었다. 화상 때처럼 매일 울지는 않았는데, 전체적으로 무력했다. 무거운 공기가 된 것 같았다. 내내 검둥개와 같이 있었고, 깁스를 푸니 더 검둥개에게 먹혀 버릴 것 같았다. 무언가 누적되었음이 자꾸 느껴진다. 위험하다.


• 인천 집 주차장에서 옆 차를 긁었다. 한달 방역 알바와 편의점일, 강의비까지 합한 만큼 수리비가 나왔다. 보험은 할증이 붙었다. 속상했다. 내 차도 수리해야 한다. 자만했고 부주의했다. 한 손 운전이 막판에 피로가 밀려왔던 것 같다. 누적이 실현되고 있다.
물밑 두꺼비는 안 본다고 없는 게 아니었다.
나의 침잠함의 원인이 다 돈 때문인 것 같아 속상했다. 주7일 알바로 돈 벌어서, 내가 스스로 낸 사건 사고 보상 치료로 다 쓰고 있는 것 같아서. 2020년 편의점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니 모든 게 무용지물인 것 같았다. 막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어느 날엔 큰 소리로 '아빠'를 막 불렀다. 검둥개가 나를 노려본다. 으르렁댄다.

• 쉼은 없고 그만둠만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알바를 계속했다. 편의점일 하는 데는 화상과 골절중 뭐가 더 힘들까? 골절 승.
아플 땐 쉬어도 되고, 휴가와 치료비, 위로비도 나오는 직업이 좋은 직업이다.
'모든 일은 다 힘들어. 힘든데 돈 많이 주는 일, 힘든데 돈 조금주는 일, 힘든데 돈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거야'라는 장항준 감독의 명언이 또 떠오른다.

블랙패딩 조끼 유니폼새로 왔다. 뉴패션 굿~
검은사제 계산중
김쫄쫄의 부상투혼

• 아파서 그런지, 아빠와 짱아가 너무 보고 싶었다. 나는 아직 멀었다. 진보하지 않는자 그녀 이름 김지애. 성장을 거부하는 너는 51세 오스카. 양철북을 울려라.
검둥개가 오면 더 죽음이 무섭고 삶이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인연의 끝이 단절같아서 같다 . 그리스도교 신앙이 너무 차갑게 다가온다. 지금 이 땅에서의 행복과 성실만이 기독교적 내세관인 것 같다. 냉정한 그리스도교. 사랑은 어디까지 이어지는걸까.

• 창조적인 일을 못하겠다.
못한 지 오래되었으니 그만두는 게 맞을까?
입시를 준비했던 고2 여름부터 이렇게 통째로 두 달 동안 그림을 안 그린적은 없었단 걸 알았다. 내가 꽤 작가로 살았었구나 생각했다. 한편으론, 안 하는 것도 금방 익숙해진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 골절도 시간이 지나면 뼈가 붙는다
화상도 시간이 지나면 피부가 돋는다
치통도 발치하면 없어진다
외상은 낫는다
낫지 않는 병, 죽을 때까지 달고 가는 병, 우울한 마음이 문제다. 뇌가 문제다.
활기를 갖고 싶다.
조급하면 망한다.
궁상떨면 손해본다.
궁상떠느라 밑창 다 닳은 운동화 신고 걸어가다가 미끄러졌다.
으이그~~~~~~~~~~~~~~~

• 골절 입기 전에 달리기와 등산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었다. 달리기 1주 4~5회, 등산 1주 1회, 5주 정도 규칙적으로 달렸고 올랐다.
하는 습관, 안 하는 습관 참 금방이다.
안 하는 습관에 푹 젖어있다.

인왕산도 올랐었고
청와대도 봤고
안산도 올랐었고
안산 메타세콰이어숲에서 하늘도 봤었고
홍제천에서 왜가리도 만났었고
경의선숲길도 걸었었다
새신 신고 쇄신!

• 다시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