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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riting/2018~

검둥개 컴 어겐

오늘 또 검둥개가 찾아왔다. 아주 깊이 묵직하게 와버려서 아침부터 눈물이 난다. 줄줄줄줄.
이런날의 나를 관찰하였으니, 조심하고 다독여야 하는데, 어제 예술지원사업 공모 지원서 작성을 포기하고 나니, '나를 다독이기'가 잘 안된다.
울고있다. 아침에 아이들의 등교체크를 하며, 손잡이를 닦으며, 난간을 닦으며, 열화상 카메라를 보며 울고있다.
나의 마음이 참 상했는데, 그게 '나때문'이라 뭐라 할수가 없다. 끈질기게 물고 있었으면 쓸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또 피했다. 해도 안될 것 같아서, 도무지 생각이 안나서. 두피밑으로 생각하기를 멈춘지 족히 10년은 넘었다.
나는 이미 고갈되어 있었는데 채워 놓지를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남들이 먼저 알았기에 나는 콜을 받지 못했다. 내 그림을 '보자 보여달라 보여주자' 없었다. 당연하다. 내가 알아차렸을 땐, 너무 귀찮았다. 그냥 '행위적 그림그리기'는 하겠는데 지적인 부분을 채우는게 너무 어려웠다. 담아낼만한게 없었다. 사럄들과의 교제도 없었고 연애를 하지도 않았고 여행을 다니지도 않았고 책도 안 읽었다. 만화책도 보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영감은 오지 않는다. 나는 알고 있었는데 그냥 내버려뒀다. 가만히 있었다. 웅크리고 잠만 잤다. 간혹 레슨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워, 종이 그림 몇장을 즉석으로 그려 걸어 놓았다. 다행히 내겐 빨리 그럴싸하게 그림을 그려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 재주는 죽지도 않는다.
나는 사실 학습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걸 제일 잘아는 사람이 나다. 나는 알고 있었다.그래서 몇배의 노력을 해야 남들과 비등하게 할 수 있거나 조금만 늦는다. 어렸을때는 딱히 열심히하지 않아도 올백을 맞고 1등을 하고 리더로도 뽑히곤 했었지만, 딱 그때까지, 딱 12살까지였다.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따라갈수는 없었고, 두뇌는 일찌감치 굳어져 버려 날이 갈수록 공부하는게 싫었다. 해도 기억이 잘 안났다. 그래도 3수를하니깐 학력고사 문제들중에 아는게 좀 보였고, 그때는 대학에 합격 할 수 있었다. 남들은 한번만 봐도 되는것도 나는 몇번을 읽어야 겨우 이해했다. 사실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기본기를 쌓기 까지 오래걸렸었다. 중3, 고등학교 2, 3학년, 재수를 거쳤는데도 소묘실력이 뛰어나지 않았었다. 3수 할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 겨우 소묘와 수채화의 기본을 습득할 수 있었다.
대학원입학시험 준비는 정말 열심히 했었다. 논문을 쓸때는 힘들었지만 꾸역꾸역 무언가를 열심히 썼다. 나는 열심히 해야 잘하는 사람이고 할수있는데 '열심히'를 놓았다. 그렇게 살았더니, 지금 나는 여기에 멍청이로 있다.
2007년 이후로 나는 채우지 않았다. 그냥 내 감정에만 들어가 있었고 나를 목격해 보지 않았다.
내 작업에 대해 2006년에 쓴 글이 전부였다. 자각하는걸 피했었다. 그러니 감성적이건 논리적이건 지금 내가 어떤 글을, 말을 표출할 수가 있겠나.
정리가 안 되는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없었다. 텅빈 내 우물은 말라 비틀어져서 돌덩이가 우수수 떨어지고 있고, 그것은 얼마나 말랐나 들여다 보는 내 얼굴에 떨어진다. 우두둑. 감은 눈이라 눈엔 들어가지 않았지만, 먼지와 알갱이는 폐에 쌓였다. 차곡차곡.
나는 할말이 없다.
공부를 해야지 하며 현대미술 책을 집어들고, 성서읽기도 하고 좋아하던 소설도 들쳐 본다. 머리에 뒤섞인다. 마음이 안정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검둥개랑 같이 언니네 이사하는데 갈꺼다. 밤에는 편의점에서 같이 일해야지. 그렇게 또 오늘을 보내자.
만나서 맛있는거 먹고싶은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다.


너무 우울한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