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조건이 바뀌었지만 이번 학기도 방역 알바를 같은 여고에서 하기로 했다. 급여가 줄었다. ㅠㅠ;
초중고는 참 똑같다. 시설면에서 새 단장을 하거나 누군가가 바뀔 수 있지만, 세월이 흘러도 제일 변하지 않는 구조, 언제나 거기 있을 것 같은 느낌, 나쁜 건 개선되지 않고 좋은 건 시들것 같은, 행정실과 교무실 구분이 명확한 것이 그렇다. 무슨 신념이라도 있는 것처럼 발열체크와 손 소독을 안 하고 들어 가는 교사 1인도 여전하다.
• 모든 사람에게 인생 정거장인 학교. 누구나 거쳐 가지만 머물지는 않는다. 단 사립 정거장에는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정거장 들를때 공부 좀 할껄 그랬다. 후회한다.
• 얼굴을 익힌 아이들 몇은 팔 왜 다쳤냐고 물어본다. 깁스한 아이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며 따뜻한 눈빛 발사.
이제 고2 된 한 아이는 학교 갈 생각에 너무 좋아서 잠을 못잤다며 7시에 등교했다. 어느날 안 보여서, '어젠 왜 안왔어? ' 물어 봤다. 체육 시간이 너무 좋아서, 너무 흥분했더니, 너무 피곤해서 학교에 못왔다고 한다. 아이고 학교를 이렇게 좋아하는 아이가 얼마나 피곤했으면 못 일어났을까. 이 아이는 작년 빼빼로 데이에 나한테까지 빼빼로를 줬었다. 온 몸에서 사람을 좋아함이 보이는 이 아이는 어떤 가정에서 자라나, 어떻게 살고 싶은가 궁금해졌다.
•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 개별 포장하는 일외엔 더 늘어난 일은 없다. 그런데 자꾸 힘이 들었던 한달이었다. 작년 급식당 일까지 했던 때보다, 1년전 건물 화장실 청소를 같이 했을때 보다 더 고단했다.
나는 작업해야 하니깐 일은 아침에만, 주말에만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알바들인데, 알바를 하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손목 골절과 함께 '누적이'들이 몰려왔다.
처음으로 하루 결근했다.


• 청주 '스페이스 몸 미술관'에서 연락이 왔다. 6월 말 전시 제안에 하겠다 했다. 마이컨디션 이즈 악중악. 걱정이다.
언제든 전시할수 있게 많은 작업이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개인전을 하려니 완료된게 안 보인다. 그냥 누가 골라서 걸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 모르겠다. 아론노....
2000년에 첫 개인전을 한 후 처음으로 초대받아 개인전을 했던 곳이다. 20년이 흘렀다. 갤러리였던 스페이스 몸은 미술관이 되었다. 전시장도 3개로 늘어났고, 보유한 작가들도 많고, 특성을 가진 사립미술관으로서 단단히 자리를 굳히고 있다. 연락해 주셔서 고마웠다.
작가로 살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던 시점이었기에 나는 좀 혼란스럽다. 알바 아줌마 생활이 나에게 어색하지 않았었는데, 작가 안하는게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하필, 팔 부러진 지금이라니. 그림은 없고 정신도 나갔는데...,아 또 죽을 것 같다....
그림 그리고 사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안 그랬던 적이 있어서 하고 있는 걸까? 안 그랬던 적이 있어서... 안 그럴 때를 아니깐?
온전히 작가 생활만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 방역 알바를 조퇴하고 청주에 다녀왔다.
조퇴도 좋았고 넓은 풍경을 옆으로 두며 달리는 고속도로도 좋았다.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건- 화가인 나로서 살아갈때만 느낄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대학에 3수하고 들어갔으니, 3수한다 생각하고 3년 이렇게 살자 했는데, 갑자기, 3수할때도 공부는 했었다는 생각이 나서 깜짝 놀랐다. 세상에... 아무것도 안하다가 대학들어간게 아니라, 나 공부했었지,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대치동까지 가서 공부학원 미술학원 다녔었지. 오마이갓~ 전시 연기하고 싶었는데 해야하는 거였다. 그래야 3수해서 대학 붙는거다. 김지애 4수 할래? ㅠㅠ




• 청주에서 관장님을 뵌 후, 공주에 사는 재환 선영 부부를 방문했다. 아늑한 집과 넓은 작업실을 구입하여 놀고 있었다!
재환네는 '예술이 놀이인' 부부다. 예술이 놀이고 놀이가 삶이라, 예술이 곧 삶인 아이들. 재환이가 요리를 해줬다. 2005년 홍대 강의를 처음 했던 시절 만났던 아이들이다. 얘네들은 나의 최악의 시기였던 일산 지하 작업실에도 왔었었다. 아이들의 늘어난 살림살이, 엄마만큼 키가 큰 아들, 강아지 4마리, 집을 사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는 재환이, 오빠를 너무 사랑하는 똑똑한 선영이.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때까지 우리 이렇게 살자~' 라고 서로 바라보고 살 수있는 사람, 우선의 가치가 같은 사람을 만나는건 진정 축복이다.



• 자연을 그리는 소영 (06년 홍대 강의때 만났던 아이, 그림책 '연남천 풀다발'작가)이 개인전에 다녀왔다. 주변에 논만보이는 파주에서 남편과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작업하고 산다. 아침에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그런 그림들이다. 하늘과 땅이 보인다.
• 교대에 재직 중인 교수인 지인을 만났다. 연구실과 전용 강의실을 구경했다. 자신의 청춘부터 일찍이, 어떻게 살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이상으로 펼칠지를 정하고, 정한 데로 되게 하려고 애쓰고 노력한 사람이 보였다. 나는 너무 놀았다. 비교했다.
삶의 궤적이 보이는 사람들과 나 자신을 자꾸 비교하니 숨거나 피하고 싶다. 하지만 더는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내게 밥 한번 먹자, 만나자 한 사람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요즘 그 사람들을 생각하고 기회가 된다면 만나려고 한다.
• 보태니컬 아트 선생인 친구의 화실 전시회에 다녀왔다. 그 친구 작품도 있었는데 정말 기품 있었다.





• 畫歌 그림 노래
어렸을때 나는 노래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었다. 화가는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를 이제는 안다.
• 2006년에 만난 또 다른 제자 경화가 영국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정교수가 됐다고 연락이 왔다. 세상에~~~ 예술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 1위인 학교다. 왜 기사가 안 나는지 모르겠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작업하면서 살았던 아이인데 이런 성과를 가지게 되어 정말 기뻤고, 나에게 연락해줘서 넘 좋았다. 나는 그 아이의 인체드로잉 방학특강때 작업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3월엔 제자들 소식을 많이 들었다. 어떻게 살고있는지 알았으니, 이제 내 소식도 전해 줄 수 있게 작업하자. 작업으로 사람 만나왔던 인생이라 안하면 아주 이상하고 더러운 사람으로 늙을것 같다. 할 수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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