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같은 빗길을 뚫고 방역 출근했다. 앞이 안 보이는 폭우여서 무서웠지만 뭐든 천천히 조심하면 목적지에 다다름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서두르면 희한하게 한눈을 판다. 어김없이 사고를 내지. 조급하면 망한다. 김지애야 잊지마라.
7월19일은 방역알바를 2021년부터 했던 이 학교에서의 근무 마지막날이다. 교육원 강의료만으로는 사람답게 살수가 없으니 '하기 싫은 일' 을 알아봐야겠다.


• 이번 전시로 작품판매가 이뤄지면 알바를 안하고 작업에 집중해 볼까도 했었는데, 아직 그런때는 아닌것 같다. 그래도 간만의 개인전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몰랐던 일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무언가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어제를 돌아봤고 지금을 인정했다. 꿈꿈했던 것들을 닦아낸것 같기도 하고, 인생의 한 막을 내린것 같다. '마지막전시' 라고 생각하고 이번 개인전을 준비했었다. '다시 시작' 이 아닌, '마지막'. 왜 그런 마음이 들고, 왜 그런 태도로 임헸는지는 아직은 모른다. 내 개인전이 끝난 다음 친구 박화영의 개인전에서 10~20년 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는데, 그 덕분인것도 같다.
대학동기들을 만나면 참 좋지만, 고 류재현 얼굴이 자꾸 떠올라 말못하는 '어떤 느낌' 이 있어서 당분간 오프닝은 삼가해야겠다 생각했다. 친구의 전시가 하남시에서 있었는데, 다같이 밥을 먹고 얘기를 하고 흥분한 시간을 지내고 난 후, 인천집으로 가는 동안 슬픔이 올라왔다. 아직 내 안의 추모가 끝나지 않았던걸 알았다. 앞으로는 부고가 전해 지면 조문을 꼭 하자. 죽음의 예를 다해야 나도 산다. 외면하고 살았다. 누군가에게 시간도 감정도 돌봄도 내어주지 못했던 나의 십여년동안, 류재와의 우정의 끝도 있었다. 내가 넘겨야 하는 장의 마지막 에 재현이가 있는걸까?
이 슬픔이 어디서 오는가 생각했다. 좋아하며 우정을 나누지도 않았고, 되려 불편해서 끊어진 관계인데 말이다. 어디서 오는걸까...?
류재가 너무 불쌍해서? 그 외로움이 너무 기가막혀서? 나의 죽음도 생각이 나서? 아직도 내안에 해결되지 못한것들이 가득해서? 같이 보낸 청춘이 그리워서? 지금 내 삶이 너무 후져서?... 모르겠다.
류재를 잘 보내고 싶다.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 모임을 삼가하는 사람 하나쯤은 있어도 될 것같다.


• 개인전을 하면서 나는 대접받았다. 작가 대접. 대접받아 좋았고 자연스러웠다. 내가 있어야 하는곳이 여긴가? 생각했다.
2000년 첫 개인전은 대관을 했었다. 이후 두번째 개인전 부터는 내 그림을 '걸자' 는 갤러리들이 있었고, 2008년과 10년엔 '팔자'는 갤러리가 생겼다(개인전 11번째였다) 작가의 지인이나 손님만을 바라지도 않고, '팔자'고 하고 '애써주는' 갤러리였다. 그때 나는 내게도 '작가를 만드는 사람들' 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림만 그리면 될 줄 알았다. 그렇게 사는건 줄 알았다.
2008,10년 홍콩에서의 개인전 외엔 모든 전시에서 그림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왔었다. 작업실은 매번 좁아졌는데도, 왜 내 그림은 안팔릴까? 왜 주목을 못받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리는것 너머의 생각은 안했었다. 나는 아마추어였다. 하지만 이것도 맞지 않는게, 요즘은 아마추어도 다 그림을 판다. '팔고 안팔고' 가 '프로냐 아니냐' 의 구분 기준이 되지 않으니 내가 더 아마추어 같다고 생각할때가 많다. 내가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건, 개인전 10번을 하는동안 매번 전시했던 그대로 그림을 가져오면서도, 불합리하다, 비효율적이다, 왜 하지? 이런 생각을 왜 안하고도 '계속 잘 될줄 알았는지' 이다. 그냥 또 그렇게 전시는 이어질줄 알았다. 드로잉을 하면서 기다렸다. 수천장의 드로잉들은 골라내기가 어려워서 이번엔 전시를 안했다. 100장이 넘는 2미터 드로잉들은 가끔 너무 후져보이는것들은 버렸다. 그러고도 70징이 남이있다
그러다가 어느날이 왔다. 그림이... 싫어졌다.
내가 작가임을 의심하게 되리라곤 몰랐는데 의심했고 그림은 싫었다.











• 내가 잘 살지 못하면, 남들과 같아지려는 욕망이 크고, 내가 잘 살면 구분되려는 욕망이 높아지는것 같다. 잘 살아야겠다.
• '본투비아티스트'
본투비아티스트 소리는 예전부터 참 많이 듣는다. 'Born to be' 보다 더 중요한건 'Die as ' 같다.
• 처음으로 '10키로 달리기' 를 했다. 평발은 오래달리기가 무리인걸까? 발바닥이 아프다.
• 이벤트처럼 지나갔다. 호박마차 탄 신데렐라의 무도회처럼 사라진것 같다. 유리구두가 남겨지고 왕자를 만나 개고생 인생 전환한 신데렐라... 나는 유리구두를 남겼는가? 왕자를 만났는가? 왕자가 나를 찾아올때 선뜻 그 손을 잡을 수 있나?
나는 스포일되었었다.
아직 멀었구나 김지애...
• 불안의 실체를 파악하자.
• 서두르다 한눈 팔았고 그래서 타이어 펑크를 냈다. 전적인 내 실수였다. 하반기는 조심하자

'My writing > 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 메모와 편의점 해고 (0) | 2022.04.25 |
---|---|
3월 메모와 그림노래(畫歌) (0) | 2022.04.02 |
손목 골절과 민주주의 (0) | 2022.03.19 |
1월 메모와 불안 (0) | 2022.01.26 |
12월 메모와 추위 (0) | 2021.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