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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riting/2018~

기로에 서있기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내가 있었다. 1년전 편의점일을 시작하고 방역알바를 나가면서, 남들의 눈엔 그림만 그리면 되는 것처럼 보여지는 삶을 그만두면서, 은근히 바랬던 '이상적인 나' 그게 있었다. 표현하면 부끄러우니깐 나만 알고 있다가, 나와 남을 놀래켜주고 싶었던게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인식을 잘 못했다. 나의 바램을.
주7일 알바를 하면서 열의를 다해 그림을 병행하는데, 그것도 지금까지 내 작가인생중 최고로 열심히 하는거고, 1년쯤 지난 거의 오늘 쯤에는, 다시사람들한테 그림을 보여주면서 작가로 굳건하게 우뚝 땅을 디디고, 바쁘고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에겐 '좀 늦어도 괜찮다' 또는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라던가 하는 쿨한 메세지도 날리는, 그림은 한층 더 견고해지고, 10년 넘게 우울증을 앓고도 일상 생활로 제대로 진입할수 있었던 다시 태어난 멋진 여자, 무언가 크게 성장한 그런 성숙한 인간인 화가, 매력 넘치니 만나려는 이들이 많아지는 중년, 보고싶어지는 그림들을 마구 그려대는, 더 굉장해진 50세 이후의 그런 나를, 문장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그걸 바랬다는 걸.

'오늘 하루만 살기' 하면서 꾸역꾸역 살았는데 그게 될리가 있나. '두피밑으로 생각을 안하는데' 그게 될리가 있나, '오늘을 충실히 산게 아니고, 오늘에 갇혀있는데' 그게 될리가 있나.
이렇게 또 일년이 흐르면 어떡하지?
나는 멈췄었고 늦었다.

2021미술은행 공모. 이번엔 좀 사주지... 하면서 실망하여 76명의 당선 작가들 명단을 쭉 본다. 작년에도 '좀 사주지' 라고 여기 썼었지. 이제 나는 안 되는걸까?
현실을 자각했으니 박차고 일어나 애를 써라 김지애.
50대부턴 해선 안되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갖춰야 하는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물론 안 갖춰도 괜찮을수 있다... 계속 이렇게 살꺼면..., 사실은 계속 이렇게도 살수도 없다. 방역알바와 편의점알바를 죽을때까지 할수 있니? 문예원 강의는 매학기 누가 개강시켜 준다니?

완벽하게 그림을 손에서 놓은지 3달이 되어간다. 그냥 한때 그림을 좀 그렸지, 전시좀 했지, 외국에서도 전시를 하고 팔기도 했지, 죽이게 그린것도 있었지, 한때 나는 그랬지..., 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지 ..., 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살것인가 아닌가의 기로에 서있다.

두손 모으고 기로에 서있기
장갑을 끼며 기로에 서있기
천장을 보며 기로에 서있기
폐기먹으며 기로에 서있기
비오는 날에 기로에 서있기

'꽤 괜찮은 퀄리티의 작품인데 왜 안됐을까. 다른 이들의 작품이 더 구입가치가 있기 때문이지. 100호 1000만원 적었는데 가격때문은 아니네' 라고 흑흑거리며 기로에 서있기
'그리면 또 그리니깐 다시 하게 될때까지 그만 두지는 말까?' 생각하며 기로에 서있기
'선하나 그었으니 이것만 완성하고 그만둘까' 생각하며 기로에 서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