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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riting/2018~

기로에 그만 서있기

주말에 편의점에 나오기 위해 일주일을 사는 사람처럼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고 있는데, 잘 안된다.
누군가 작가로 살기 위해서 알바(공공근로, 편의점, 청소 등등)를 해야겠다고 나에게 말 한다면, 작업은 접겠다는 각오가 되어있냐고 아니라면 하지말고 그냥 지금처럼 살라고, 차라리 빚을 지라고 말할꺼다. 주말에만 일하니깐, 아침에만 일하니깐 나머지 시간은 잘 써서 작업을 한다던가, 이전처럼 빈둥대면서도 무언가 하고 있다는 류의 생각은 어렵다고 충고할꺼다. 여행을 가거나, 미술계 사람들을 만나거나, 시각적 경험을 많이 하고 감성적 충만을 얻어서 그걸로 다음 작품을 제작한다는 계획은 버리는 거라고 말해줄꺼다. 지금까지 살았던 삶은 '한때' 가 되는 다른 길을 가는 거라고, 그러니 작가의 길에 있고 싶으면 다른일을 시작하지 말라고, 그냥, 뻔뻔하게 살라고 그게 작가려니 하라고, 그게 예술가려니 하라고, 그냥 좀 더 작업을 열심히 해 보라고 그렇게 말할꺼다. 그가 최소 30년은 그림을 그려온 50대라면 더 강하게 도시락 싸서 따라다니며 말릴꺼다. 교습소를 열라거나 학생을 받으라는 말도 하지않을꺼다. 그냥 지금처럼 살라고 그렇게 말할꺼다.
요즘 나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작가로서 해야하는일 때문에 누군가와 만나는게 더 어색해진걸 알게 되었다. 할말이 없고 낯설다. 그냥 가기싫어 죽겠지만 노느니 뭐해, 이것도 안하면 인간도 아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하고, 희한한 보상심리로 아무꺼나 가득 내 몸속으로 먹을것들을 밀어 넣고, 인생에서 이렇게 많이 누워있을수 있나 싶게 잠을 잔다. 그것만 하고싶고 아무것도 하고싶지가 않은데 어떤 유대가 가능하겠나.
'너는 그랬지만, 나는 달라' 라고 그가 말한다면..., 그래도 하지 말라고 할꺼다. 그래도 ...하지마.

나는 한가지 일만 해야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혼도 못했을 수도 있을듯 싶다.
작가라면 작업만, 그림그리는 일만 해야 그래도 이전만큼의 양과 질을 갖춘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런 작가. 남달리 체력이 좋은것도 아니었고, 천재적 집중도가 있는것도 아닌 그냥 평균적인 사람이란걸 편의점과 방역 알바 1년만에 알게 되었다. 회사원이었다면 취미생활은 못 했을것 같고, 연애를 해도 바람은 못 피우는 그런 사람.
기로에 서있었는데, 이제 점점 한 쪽으로 치우쳐 가는것 같다. 문턱에 걸터 앉아 내내 화만 내고 있었는데, 이젠 들어가던지 문을 닫고 돌아서든지 해야하는 것 같다.
오래 일할수 있는 고정직 마트일을 찾아 보는게 내 긴 인생을 봤을때 더 나은 일이 아닐까? 작가로서의 삶의 문은 딱 닫는거다. 상처가 아물면 아팠던 날들이 잊혀지듯, 작가로 살았던 나를 나는 잊을꺼고 익숙해 질꺼다.
나는 마음을 정하면 미련을 두지 않고 적응을 하는 성격이니깐 새인생 잘 살꺼다. 마음을 정하느냐 안 정하느냐... 그게 문제다. 마음을 안 정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던 거다. 단, 작가의 문을 닫는다면, 전시를 보러 가거나 작가인 나를 알던 사람들이랑은 안 만날꺼다. 그래야 비교를 안하지. 그림들은 폐기처분하고 홀가분하게 다시 시작하는거지. 그림의 '그' 자도 입밖에 내지 않을꺼다. 그지같다는 말도 안 쓸꺼고, 그리스 여행도 안갈꺼고 예수그리스도는 주여 라고만 할테다.
예술? 안해도 될것같다...아아아...아
문턱에 걸터앉아 화만내고 있는건 이제 그만하자.
그래도..., 한달만 더 있다가 '기로에 그만 서있기' 할까? 한달만 더 있다가 문턱에서 내려올까? 한달만 더 있다가 ... 정해도 될까?
.... 일단 좀 자자.

기로에 그만 서있겠습니다
줄무늬를 입고도 기로엔 그만 서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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