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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riting/2018~

12월 메모와 추위

• 이번학기 들어서 처음으로, 급식당 안 가고 학교 가는 날이다. 매 월요일마다, 7시~10시 여고방역, 10:30~1:00 초등급식실, 2~9시까지 강의를 했었다. 아침 여고 방역을 10시에 마치고 작업실에 가서 몸을 녹이고, 편히 있다가 2시 수업 맞춰서 갈 생각을 하니......, 조으다~ ^^ ~ 1일 27,525원 9/6~3개월 열심히 벌었다. 이제 그만. 노트북사야지~


• 어제는 '샬롬의 집' 다녀왔다. 한달에 한번 식사와 청소를 돕고 있는데, '남을 어떻게 도울까'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 같이 무언가를 하는 건 참 고마운 일임을 새삼 느꼈다.
일평생 빈둥대며 살았다. 아무때나 자고 아무때나 일어났다. 아버지, 히도리, 짱아 모두 죽고 난 후, 더 망가졌었다. 다음 걸음을 위해 반드시 결말을 맺고 넘어가야 하는일이 있었다. 끌고 온 지 10년이 넘었었다. 매듭지었지만, 너무 오래 된 무기력한 일상은 회복이 안됐었다. 벗어났을때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지 않았었던 나를 미워했다.
작가라고, 예술가라고, 돈은 없으면 없는데로 살 수 있다고 교만떨면서..., 알고보니, 그것도 어머니와 같이 사는 인천 집도 있고, 형제자매가 있고, 예쁜 차도 있고, 강의를 하고 있었고, 알바하는 학원도 있었고, 개인 레슨도 했었고, 전시회를 하면 한 두개 팔리는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한번 팔리면 수백이 들어오니, 나는 그렇게 그림 팔리는 횟수가 늘어날 것으로만 생각했지, 줄어 들거나 없어질꺼란 생각은 못했다. 줄었고 없어졌고, 전시회는 끊어졌다. 전속 화랑도, 컬렉터도, 주목하는 관계자도 없었고, 대학 교수가 되지도 못했으면서, 더 잘나가는 작가가 될꺼라고 '나 혼자만' 생각했었다. 생각만하고 애쓰지 않았다. 데뷔 이후 20년을 그렇게 살았고, 10년을 눈을 감고 숨어 있었던 나는 어쩔줄을 몰라하는 덩어리 하나가 되어있었다.
그림 그리는게 싫어 졌다. 카드 돌려 막다가 500만원도 안되는 돈 때문에 죽고 싶었었는데, 언니가 막아준 적도 있었다. 나이 50이 넘었다. 그러고도 정신 못차리고, 나는 고고한 척, 도도한 척 작가 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진정 모든게 끊기고, 벼랑이 이런건가 절실히 느낀 날이 코로나와 함께 왔다. 실제로 모든게 어두웠고, 시력에 문제가 생긴것처럼 까맣게 보였다. 앞이 잘 보이질 않아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예술인복지 재단에서 대출 200만원을 받아 생활비와 카드 막는데 썼다. 작업실은 유지해야한다는 생각으로 편의점일을 시작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시급일을 찾아 여러가지 일을 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참 이상한게, 빈둥대며 놀면서, 드로잉 하나 끄적대던 때와는 달리, 아무일도 안하고 사는 사람 같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도도한 작가놀이때 보다 '더 많이' ' 더 자주' 들어서 괴로웠다. 최저시급 받는 알바를 전전하면서, 남이 싸고 난 변기를 닦고, 남이 먹고 난 것들을 치우면서, 내가 너무 '돈만 추구하는', '돈만 버는' 인간으로 사는게 아닐까 했다. 뭐 얼마나 번다고... 웃꼈다.
그래서 샬롬의 집 봉사에 함께 하게 된거다. 중증 장애를 가진 분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내 몸으로, 내 시간으로라도 할수 있는 일을 찾았다. 1년이 넘었고, 여기서 만난 사람들도 내가 몰랐던 세상의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샬롬의 집 식구들이 더 맛있게 편하게 드실까? 소화가 더 잘되게, 살은 덜찌게, 몸은 덜붓게 하는 음식은 뭘까, 여기저기 어딜 더 청소해야하나? .... 그런 대화를 나누고, 기도하고, 실천하는 두 가정은 새로웠다. 각 가정마다 두명의 어린 자녀들이 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쓸고 닦는지 모른다.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 나는 아직 모르는게 많다.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남한테 충고하고 가르치지 않는 내가 좋다. 욕을 먹다 보니, 내가 나의 좋은 점들을 발견 하게 되는게 참 희한하다.
예전의 나라면 자책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 아웃오브더 박스 전시를 철수했다. 한달 동안 빌려서 잘 썼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쇼' 였는데, 시야가 확장되었다. 예술의 역할, 공공미술에 대해 좀 더 객관적 시선으로 보게 되었고, 나도 나중에 윈도우박스를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유리배에서 하선 했다.

final change
song of body- dancer
2nd change
song of body - shouting


• 내일은 성탄전야. 올해도 편의점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난 괜찮다. 와인 매출이 대박 쳐서 사장님이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어제는 내년에 있을 한 단체 전시를 위한 미팅이 있었다. 활동을 많이 했었을때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단체전이나 미술관 전시 콜을 많이 받지 못했었다. 거의 없었다. 유대를 유지하는 큐레이터, 기자, 평론가도 없다. 그래서 더 더욱, '나 혼자 징검다리 하나씩 내가 놓아가며 강을 건넌다' 고 생각했던것 같다. 오만이었다는걸 지금은 안다. 그 돌덩이 하나도 누군가가 놓아준 것이었고, 다음 돌덩이도 다른 이들의 도움, 작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나를 바꿀것 같진않다.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오랜만에 작가로서 사람들을 만나니 좋았다. 같이 무언가를 이뤄나간다는 성취감을 처음 느껴본 것 같다.

•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왜 죽었는지 너무 궁금해서', 장례식장으로 발걸음 정도는 할 사람들에게 나는 잘하면서 살꺼다.
' 그 여자 죽었대~ 왜? ~ 오징어볶음 해 먹었는데 어쩌구~~~~떡갈비가 어쩌구~~~~'
그런 사람들 말고.
• 올해 초, 대학 동아리 선배인 채관형이 돌아가셨을때, 도데체 왜 돌아가셨는지 너무 궁금했다. 혼자 장례식장에 갔었다
그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거나, 같이 얘기하고 싶단 마음이 든다면, '바로 연락하자'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었었다.

• '올 한해 동안 했으면 좋은 일들 리스트 ' 달성을 너무 못했다. 남은 일주일동안 시작이라도 해야겠다 . 김지애 화이팅!

지난주 토요일엔 눈이 많이 왔다
박스를 깔아 둔다 눈비 필수
이 사진 좋다~ 드로잉해야지~ 사람이 있는 거리 그리는 걸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모두 편의점에서 열심히 일하며 잘 보내자 김지애~~~
새 패션~ 빨간양말 왕 따뜻!
새벽부터 온도가 급강하 된다는데..., 이번 편의점은 따뜻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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